건축비평-곤지암 부메랑 주택

건축비평 _ 부메랑 곤지암의 단독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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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al criticism _ Chalet Boomerang
A Detached House in Gonjiam

나는 오랫동안 한국의 목조건축을 심사해왔으나 그 중에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 몇 작품이 있다. 얼마전 곤지암에서 만난 목조 단독주택 ‘부메랑’이 그 중 하나이다.

동서고금에 있어 주거란 ‘가족생활’을 행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가정(家庭)’은 집(家)과 뜰(庭)이라는 2개의 글자로 이루어져있다. 또한 생활(生活)이란 한자를 그대로 풀어보면 ‘생생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거란 ‘집과 뜰에서 생생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Martin Heidegger(1889-1976)는 ‘주거란 <세계안의 존재>로서 인간의 중심이 위치한 장소’와 같은 의미적 언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집과 뜰 중에 그 어느 것을 빼고서도 인간에게 있어 주거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주거에서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도시도 농어촌도 옛 부터 집과 뜰을 밀접하게 연결한 중정식 주거였던 한국 주거는 오늘날 급속한 주거의 아파트화에 의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뜰의 존재가 지워졌다. 여기에 더해 당황스러운 것은 토지가 있는 현대주택에서도 귀중한 뜰이 단순히 관망하는 존재가 되어버려 집과 뜰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종래의 중정형 주택과 같이 집과 뜰이 일체화된 생활을 즐기는 주거는 없어졌다는 것이다. 집과 뜰, 어느 것이 빠져도 만족스러운 가정생활을 영유할 수 없으며 주거로서 성립되지 않는다.

기회가 될 때마다 나는 젋은 건축사들에게 “집과 뜰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대지 전체가 살아있는 주거를 설계하자”고 얘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나로서는 집의 한쪽 날개를 뜰과 집을 연결한 반(半)외부의 처마공간으로 제안한 ‘부메랑’과의 만남은 큰 자극을 받을 수 있었던, 탁월한 작품이라고 높게 평가하는 바이다.

큰 지붕이 덮여진 반(半)외부의 마당(데크) 공간은 일을 하는 동적인 앞뜰과 관상하는 뒤뜰의 중간에 위치한다. 반 외부의 넓은 마당(데크) 일부분이 지면에서 더 깊게 파여 있어서 그 곳에 벽난로(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사람은 물론 거기에는 개나 고양이도 함께 불을 대면하고, 몸을 녹이고 요리를 하고 담소를 나눌 수 있다. 물론 난로의 여열은 사랑채에 온돌의 열원을 이용하고 있다.

태양이나 별과 달이 운행하는 천문 아래에서 비, 바람, 흙, 불을 체감하고 꽃과 풀을 감상하며 새소리, 벌레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거기에는 저서<공간의 시학>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의 조어(造語)이며,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잇는 ‘Topophilia’ <장소애:場所愛/Topos(장소)+Philia(사랑)의 조어>의 풍경이 나타나고 있으며, 땅/불/물/바람의 시적 이미지의 세계가 훌륭하게 형상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건축디자인에는 크게 두 가지의 분야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공간디자인이며 또 하나는 생활디자인이다. 알기 쉽게 도면으로 예를 들면 단면도는 공간이며, 평면도는 생활이다.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비례, 구성, 형태, 장식 등의 표현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이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생활을 디자인 하는 것은 가족, 사회조직, 세계관이나 우주관, 신앙 등에 대해서 고찰하여 그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가기 위해 참신하고 매력적인 프로그램을 제안할 수 있을까’가 건축사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공간과 생활이라는 두 가지 디자인을 염두하고 ‘부메랑’을 비평하라고 하면 난로가 비치된 선큰을 가진 반(半)외부의 공간이 보다 집과 뜰을 밀접하게 관계지어 인간과 자연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장소를 제안한 이 주택은 생활디자인으로서는 그 어느 것보다 높은 레벨의 작품이며 한국에 있어서는 희소가치가 높은 주거라고 할 수 있다.

재능있는 젋은 건축사가 매력있는 프로그램을 제안하면서 이에 더해 구조에 대한 표현에서도 보다 새로운 추구를 보여준다면 필히 가까운 미래에는 공간과 생활이라는 2가지의 디자인이 가능한 희유(稀有)한 건축사로서 성장해 줄 것이다.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고 싶다.

 

글. 도미이 마사노리 Tomii Masanori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객원 교수

 

도미이 마사노리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객원 교수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일본 가나가와 대학교 재직 중 동아시아의 주거비교문화연구에 착수했고, 2004년부터 한양대학교에서 한국 학생들을 지도해왔다. 한국에 남은 일제 강점기 건물에 대한 연구에 조예가 깊고 1930년대 경성 거리를 재현하는 전시를 서울 청계천 문화관, 도쿄 한국문화원 등에서 개최하며 큰 화제가 되었다. ‘더불어마을 프로젝트’, 보가 없는 한옥, 일본식 목조주택 재생작업 등을 담당했다. ‘한국건축을 가장 많이 이해하는 일본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의 월간 『건축사』에 한국의 건축 이야기를 연재 중이다.

한 건축가의 다가구와 다세대 주택론

한 건축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같은듯 같지 않은 <다가구주택><다세대주택>.

주택공급난 해소를 목표로 시작된 이 2개의 건축유형은 그러나 자본논리 아래 획일화된 디자인과 주차, 채광문제 등 오늘날 우리네 거주환경과 도시풍경을 저해하는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린 이 이단아적인 건축은 그렇다면 어디서 · 어떻게 · 왜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한눈에 구분하기도 힘든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의 차이는 무엇이고,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대한민국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격동기 속에서 태어난 다세대/다가구주택. 단순히 건축가의 책임으로만 떠넘기기엔 뭔가 부족한 이 둘의 시작을 되짚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도시풍경을 이해하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일상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건축법 시행령: 다가구주택>
주택으로 쓰는 층수가 3개 층 이하로서 지하 주차장을 제외한 1개 동의 연면적이 660제곱미터 이하이고, 19세대 이하가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말한다. 다만, 1층 바닥면적의 2분의1 이상을 필로티 구조로 하여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부분을 주택 외의 용도로 쓰는 경우에는 해당 층을 주택의 층수에서 제외한다.

<건축법 시행령: 다세대주택>
주택으로 쓰는 1개 동의 바닥면적의 합계가 660이하이고, 층수가 4개 층 이하인 주택

:: 다가구주택은 단독주택으로 분류돼 가구별 분양이 불가능하지만, 다세대주택은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 포함돼 호수별 분양이 가능하다.

88서울올림픽으로 나라 전체가 한껏 들뜬 1988.
전쟁의 폐허를 딛고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자긍심 위로 저금리, 저유가, 저원화로 대두되는 ‘3()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은 유례없는 경제호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 증시는 13대 대선을 전후하여 92.6%(1987)72.8%(1988)가 올랐고, 시중에 돈이 풀리면서 주택가격이 폭등하고 전월세난이 심화되었다.

당시 1988년부터 1991년까지 3년간 서울지역 아파트 값은 평균 2.6배(!!)가 올랐고, 유가하락으로 경기회복세로 돌아선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전국 주택가격은 평균 67%가 올랐다고 하니 재태크 수단으로 아파트를 선호하게 된 점이 이해할만하다.

그리고 이러한 주택가격의 상승원인으로 꼽혔던 것이 바로 주택공급량의 부족.

한국전쟁 이후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고 주택보급량을 늘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건설정책은 1970년대에 들어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각종 문제들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어쩌면 체계적인 주택정책 없이 물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했던 시기를 지나 안정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양이 아닌 질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겠다. 특히 1970년대 강남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부동산 투기로 주택시장이 과열되자 정부는 투기를 억제하고 주택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한 부동산대책을 내놓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등장한 부동산 대책인 ‘8.8부동산 종합대책이 바로 그것이다.

197626%였던 전국의 평균지가 변동률은 197734%, 1978년에는 49%까지 올랐고, 특히 서울 지역 땅값은 1978년 한 해 135.7% 가 폭등했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올랐다 라는 시대.

물론 여느 정책이 그렇듯 부동산 대책도 수정과 조정이 이뤄졌고, 이로 인해 1980년 중반까지 대한민국 주택시장은 과열과 침체가 반복되는 양상이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1982년 도입된 분양가 상한제는 1989년 원가연동제가 도입될 때까지 주택시장을 억눌렀고, 주택난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성화만큼이나 뜨거웠던 부동산 시장

그리고 치뤄진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국제행사를 맞아 대규모 개발이 이뤄지고 3저와 맞물려 경기가 호전되면서 부동산 시장이 다시 과열되기 시작했다. 이에 1988년 들어선 노태우 정부는 주택 200만호 건설을 내세우며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5대 신도시 조성계획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5대 신도시를 다 합하더라도 주택난을 해결하고 주택보급률을 급격히 끌어올리기는 어려웠던 것.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정부는 결국 비장의 카드를 꺼내든다.

바로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

1×4 house, 다세대주택, 디자인밴드 요앞 (사진. 류인근)

동심원, 다세대주택, 소수건축사사무소

다세대주택의 등장

사실 1980년대에는 도심 주택난이 심화되면서 단독주택의 지하와 창고 등을 주거공간으로 개조하여 임대하거나 1층과 2층의 현관을 따로 내어 각각 임대하는 등의 방식이 속속 등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가구가 거주하는 단독주택’은 기존의 단독주택 개념을 뒤흔드는 것으로 새로운 주택형식의 정립이 필요하였고, 도심 속 자투리땅의 활용을 극대화하고, 주택난의 새로운 해결책으로 떠오르며 1984다세대주택으로 명문화되었다. 당시 건축기준은 연면적 330m² 이하, 층수 2층 이하, 2~9가구로서 비로소 분양용 소규모 공동주택이 제도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다세대주택의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인접대지 경계선과의 거리를 연립주택처럼 높이의 1/2을 띄우는 것에서 2m만 띄우도록 규제를 완화하자 전국적으로 다세대주택 신축붐이 일어나게 된다.

주택난의 해결책으로 급부상했던 다세대주택.

그러나…

주택구입 능력이 없는 저소득 가구들에게 여전히 집은 비쌌고, 다주택으로 인한 세금부담을 피하고 임대를 통한 소득증대를 원하는 건물주들은 여전히 지하와 창고, 옥상 등을 불법개조해 임대용으로 다세대주택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박공박공, 다가구주택, 민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교하동 다가구주택, 서가건축사사무소 (사진. 신경섭)

다가구주택의 등장

이에 정부는 저소득 세입자의 주거안정을 도모하고, 집주인이 1주택 자격을 유지하면서 임대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함으로써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1990‘다가구주택’을 새로운 주거유형으로 제도화한다. 그리고 다세대/다가구주택의 공급확대를 위해 연면적 330m²에서 660m², 가구 수를 2~9가구에서 2~19가구로, 층수는 2층 이하에서 3층 이하로건축기준을 완화하되, 다가구주택의 경우 대지경계선에서 1m만 띄우게 더욱 완화함으로써 저소득 세입자를 위한 다가구주택 신축을 더욱 유도하였다. (1999년에는 다세대주택의 2m이격 마저 폐지되고 다가구와 다세대주택의 건축기준을 하나로 통합. 현재는 개별등기 여부로만 구분)

그리고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1990대 초에는 주택공급량이 크게 늘며 주택가격이 하락세에 접어들고 전월세가 안정화되기에 이른다. 흥미로운 사실은 1993년 다가구주택을 다세대주택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소득세법상 공동주택으로 간주하자 다가구주택 소유자들의 소송이 이어졌고, 마침 주택보급이 증가하고 전월세가 안정화되면서 다가구주택의 도입취지가 퇴색하자 정부는 다가구주택을 폐지하거나 300m² 이하로 규모를 줄이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명과 암 그리고

다세대/다가구주택이 도심 속 자투리 땅을 활용한 민간주택건설을 활성화하고, 주택보급률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부족한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급급했던 물량 중심의 경제논리로 보급된 만큼 도시와 건축 그리고 거주민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도외시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초래된 채광과 통풍, 주차, 쓰레기 문제 뿐만 아니라 도심의 몰개성화와 주민들의 소통공간의 부재 등은 오늘날 우리세대 건축가들이 새롭게 떠안은 과제일 것이다.

1세대 다세대/다가구주택이 등장한지 30. 사이클이 한 번 돌아 노후화된 다세대/다가구주택을 철거하고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가 증가하는 요즘, 여전히 30년 전 모습 그대로 전통을 지키는 건물들이 많은 가운데 의식있는 건축가와 건물주들이 제시하는 다세대/다가구의 새로운 대안들이 우리의 건축과 도시를 조금씩이나마 변화시키길 기대한다.

아니 어쩌면 다세대/다가구에서 건축가의 참여는 이제 막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글. 김형래 (에이플래폼)

마장동 협소주택, 다가구주택, 건축사사무소 H2L (사진. 윤동규)

숨집, 다가구주택, 투닷건축사사무소 (사진. 홍석규)

강녕재, 다가구주택, 보편적인건축사사무소

커빙스케이프, 다가구주택, AAG architecten

건축과 음향을 의뢰 계획이 있다면

[건축과 음향을 하시려면…]
우리 회사는 음향을 목적으로 한 #공연장 이나 #교회 #녹음실 #회의실 #전시실 등에 울림이 좋은 소리를 만드는 공간을 설계하고 거기에 필요한 만큼의 음향을 사용하여 최적의 사운드를 활용할 수 있는 경제적이고 물리적으로 좋은 조건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특히 교회의 음향이 중요도가 놓아짐에 따라 많이 의뢰를 하십니다.


상황에 따라 이익이 되기도 하지만 손해를 많이 보면서도 완성도를 위해 더 부어주는 교회현장도 많습니다.


또 여러 단체와 당회에서의 요청에 의해 컨설팅을 자주 합니다. 댓가을 정당하게 받는 곳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업체와 장비를 선정하는 일에 본질과 상관없는 것에서 기준을 찾으려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교회나 단체가 작은 경험을 내세우며 무엇을 하려고 하지말고 물량과 품목을 정당하게 제시하는 기업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동적으로 주장하고 권면하는 방식을 잘 찾아 팔로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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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 ‘폭포위의 집’… 건축가·건축주 함께 지었다

20세기 최고 ‘폭포위의 집’… 건축가·건축주 함께 지었다

20세기를 연 최고의 주택 ‘낙수장(落水莊, Fallingwater)’.  Wikimedia Commons20세기를 연 최고의 주택 ‘낙수장(落水莊, Fallingwater)’. Wikimedia

■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 ④ ‘낙수장’ 건축주 카우프만家

거실 바닥이 폭포 위에 걸친

자연과 어우러진 혁신적 구조
건축가 라이트가 설계 ‘낙수장’

건축주 카우프만이 실제 거주
건축가와 소통하며 건물 완성
예술 아닌 ‘사는 공간’이 핵심

“물소리 시끄러워 떠나”는 낭설
오랫동안 살다가 아들이 기증

20세기를 연 최고의 주택 ‘낙수장(落水莊)’은 1939년에 에드거 카우프만(Edgar Jonas Kaufmann, 1885∼1955)을 위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가 일흔이 넘어 완성한 여름 별장이다. 폭포는 영어로 ‘waterfall’이라고 하는데, 라이트가 스케치하고 나서 그 옆에 ‘Fallingwater’(떨어지는 물)라고 적은 것에서 이름이 지어졌다. 이 주택은 과감한 외팔보(캔틸레버) 구조로 거실의 바닥을 폭포 위에 걸치고 있으며, 거실에는 강으로 곧장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마련돼 있다. 외팔보란 한쪽은 어깨에 고정되고 손바닥 쪽은 길게 뻗는 것과 같은 구조를 말한다.

이 주택이 20세기 최고의 주택인 이유는 폭포 위에 지어진 주택이 자연과 흠뻑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대를 살던 이 주택의 건축주가 자신의 생활을 자연 속에서 섬세하게 일구어낸 데 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고 ‘환경보전협회’가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가족들이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주택의 핵심은 “그-안에-사람이-살게-된-공간”(the-space-within-to-be-lived-in)이라고 라이트가 지어낸 말에 요약돼 있다. 관람객처럼 구경하니 멋지더라는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그 주택 안에 사람이 살면서 만들어진 밀도와 깊이를 가진 공간’이라는 뜻이다.(이 말이 어렵게 들리면 한 번 더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 보라.) 그런데 이 밀도와 깊이는 성실하고 통찰력이 있는 이 주택의 건축주에게서 비롯했고 그들에 의해 완성됐다.

그런데도 어찌 된 일인지, 이 ‘낙수장’의 물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게 된 건축주 카우프만이 할 수 없이 본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거나, 예술성만을 강조해 살 수 없게 된 아들은 이 집을 결국 기부해 버렸다는 낭설이 여기저기에 있다. 이 낭설을 반박할 증거로 한 가지만 말해 보자. 1941년에 일어난 태평양 전쟁으로 난방 연료가 부족하게 되자 호텔에서 살던 이들은 토탄(土炭)을 얻기 쉬운 ‘낙수장’으로 옮겨 살 정도로 이 ‘낙수장’은 단순히 별장으로만 쓰이지 않았고 오랫동안 이들의 생활과 함께했다.

‘낙수장’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건축주 카우프만과 그의 아들 카우프만 주니어(Edgar Jonas Kaufmann jr., 1910∼1989)의 건축에 대한 지성인으로서의 태도다. 카우프만은 피츠버그의 대표적인 카우프만 백화점의 소유주이자 경영자였다. 그가 70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피츠버그의 신문은 1면에 ‘상인의 왕자’를 잃었다고 슬퍼할 정도로 시민에게 존경을 받은 인물이었으며, 라이트도 20년 이상의 건축주이자 친구였던 그를 깊이 애도했다.

아들 카우프만 주니어는 라이트의 ‘자서전’을 읽고 감동해 1934년 건축가가 될 마음이 전혀 없는데도 탤리에신(Taliesin)에서 아틀리에를 하던 라이트를 찾아가 면접을 보고 사무소에 들어갔다.

당시 라이트는 일이 별로 없어 이곳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아틀리에 겸 건축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우프만 주니어가 아틀리에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돼 라이트는 피츠버그에 큰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같은 해 애팔래치아 산맥을 흐르는 베어런(Bear Run)에 지을 ‘낙수장’ 설계도 의뢰받았다.

베어런의 폭포는 미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거주의 원상이었다. 건축주 카우프만은 큰 바위 사이에서 2단, 3단의 폭포가 돼 떨어지는 베어런의 모습에 크게 매료됐고, 낮은 여울에서 헤엄도 치고 일 년 내내 폭포를 보며 지낼 수 있는 별장을 짓고 싶어했다. 폭포를 보고 그 소리를 들으며 폭포에 손을 적시는 생활. 그것은 복잡한 근대 도시생활을 피해 휴식을 주는 보완물, 곧 근대사회가 낳은 또 다른 생활 형태였다.

라이트와 함께 주택을 지을 곳을 찾아간 카우프만은 베어런에서 헤엄을 치고 나서 물이나 비바람에 씻겨 반들반들해진 커다란 바위(boulder) 하나에 배를 깔고 엎드려 일광욕을 했다. 라이트가 이 바위를 거실 벽난로의 바닥으로 했고, 그것에서 25㎝ 내려간 지점을 거실 바닥으로 삼았다. 태고부터 그 땅에 있었던 바위가 인간이 지은 건축과 직접 이어지게 된 것이다. 폭이 7m인 2층 테라스를 받치는 외팔보의 길이는 1층 주심에서 한계치인 6.4m나 되었는데, 이 바위는 거실 바닥을 받치는 네 개의 외팔보 중 한 개의 기초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수평선이 크게 강조돼 건축의 존재감이 뚜렷해졌고 강과 바위, 폭포와 숲은 하나가 됐다.

라이트는 현장에 다녀오자마자 돌 하나하나, 지름이 15㎝보다 큰 나무까지 모두 기입한 등고선 측량도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건축주는 이듬해 3월에 측량도를 보내면서 두 달 후에는 따로 부탁한 백화점 계획안도 함께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라이트는 6개월 동안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으며 측량도만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카우프만은 계속 기다릴 수 없어 어느 날 탤리에신에 들르겠다고 전화를 했다. 그러나 이때도 별장 계획안은 어떻게 잘 되고 있냐고 묻지 않았다. 그런데도 라이트는 도면이 다 준비돼 있으니 어서 오라고 했다.

라이트는 약속한 날 아침 6시 반에 아침 식사를 마치고 처음으로 별장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제도판에 앉아 “부인과 카우프만은 이 발코니에서 차를 마시겠지?… 다리를 건너 숲을 이렇게 빠져나온단 말이야”라고 중얼거리며 1층 평면도, 2층 평면도, 단면도, 입면도를 그려냈다. 그리고 “집에는 이름이 있어야지” 하며 제일 먼저 그림 도면의 제목으로 ‘Fallingwater’라고 적었다. 이윽고 낮이 돼 카우프만이 도착했다. 라이트는 ‘낙수장’의 배치와 주거의 철학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점심 식사하는 시간에 두 제자가 나머지 입면도 두 장을 라이트 풍으로 완성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라이트는 이 두 장의 입면도로 계획안의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카우프만은 라이트가 처음으로 보여준 도면을 보고 놀랐다. “나는 이 집이 폭포가 보이는 곳에 놓여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니, 폭포 위에 걸친 집이라니?” 이에 라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폭포와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단지 폭포를 보는 것만이 아닌, 당신 생활의 일부가 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낙수장’은 라이트로서는 처음으로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주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건축주에게 저 거대한 외팔보로 지지되는 거대한 발코니가 얼마나 위태롭게 보였을까? 실시도면이 완성되자 카우프만은 이러한 엄청난 구조가 정말 안전한지 크게 걱정이 돼 잘 아는 구조 기술자에게 모든 도면을 주고 의견을 구했다. 그러고는 구조 전문가를 시켜 따로 도면을 만들어 외팔보의 철근을 두 배로 늘린 다음 콘크리트를 타설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만큼 건축주도 건축가 못지않게 자유로운 평면에서 새로운 생활을 원하고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소식을 들은 라이트는 격노하여 이런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카우프만 씨, 만일 이 주택에서 일어난 콘크리트 기술에 대한 대가를 당신이 지불하신다면 제가 하는 일의 모든 의미는 사라지고 맙니다. 이 일을 당신이 처리하려 하신다면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비난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떤 건축가와 친하신지는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 그는 분명히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어떤 적절한 사람과 교제해야 하는지는 모르시는 듯합니다. 이 집에 대해 기대할 권리를 가진 당신이나 그 밖의 어떤 다른 가족보다 나는 이 집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당신의 신용을 얻지 못한다면 모든 게 끝입니다.”

이에 카우프만은 라이트가 쓴 문장에서 말을 조금 바꾸어 이렇게 점잖은 사과의 편지를 보냈다. “친애하는 라이트 씨, 만일 이 주택에서 일어난 콘크리트 기술에 대한 대가를 당신이 지불하신다면 제가 하는 일의 의미는 사라지고 맙니다. 저는 떠맡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비난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떤 건축주와 친하신지는 모르지만 제가 생각하는 그런 건축주는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당신은 어떤 적절한 사람과 교제해야 하는지는 모르시는 듯합니다. 저는 가능한 한 이 모든 일에 신용과 열의를 쏟고 있으며, 당신의 노력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그런데도 내가 당신의 신용을 얻지 못한다면 모든 게 끝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과의 글에 이어서 실시도면을 서둘러 달라고 부탁했다.

카우프만 가(家)의 사람들은 가만있다가 다 지어진 다음에 큰 허점을 알게 된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주택 건축주 판스워스와는 전혀 달랐다. 이들은 건축가와 세심하게 의논해 스스로 살기에 좋은 주택을 짓고자 했다. 이들은 가구나 조명기구의 샘플을 먼저 생각하고 라이트의 허가를 받았으며,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카펫은 라이트가 디자인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다음 건축가를 설득해 정한 것이다. 아들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월터 그로피우스의 자택에 설치된 정첩과 손잡이가 라이트가 설계한 것보다 훨씬 좋다고 여겨 직접 가보고 이를 그 제품 회사에 주문했다. 부인 릴리언(Liliane)은 게스트하우스 현관 옆에 작은 수영장을 제안했고, 카우프만은 유리창이 직각으로 만나는 곳에 창틀을 없애고 양쪽으로 열게 한다든지, 유리창의 창틀이 안 보이게 직접 돌벽과 만나게 해달라고 건축가에게 주문하기도 했다.

카우프만은 외팔보 구조에 걱정은 크게 하면서도 완공되고 나서 20년 동안 거대한 외팔보가 얼마나 처지는지를 매년 측정해 기록하게 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들 카우프만 주니어는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법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한때 창의 유리가 얼어서 금이 갔지만, 창이 구조에 길들여졌는지 시간이 지나자 그런 걱정이 없어졌다고도 말했다. 또한 그는 1950년에는 비가 심하게 새서 양동이 17개로 받아냈으나 건축가를 원망하지 않고 시공상의 잘못을 밝혀내어 고치기도 했다.

카우프만 주니어가 쓴 이 글은 슬기로운 건축주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면 이 결함은 라이트의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이제까지 할 수 있었던 수법의 한계를 넘어서 ‘낙수장’을 설계했다.… 위대한 기념비적인 건축은 난처한 구조 문제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어떤 한계를 넘어 그 건축물을 세우고자 애썼기 때문이다. 아야소피아의 돔, 로마의 산피에트로 종탑, 파리 판테온의 중심부가 그렇다. 이런 기념비적 건축물은 구조적인 안정이 불안해 크게 고쳐야 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런 건축물들은 지금도 계속 지어지고 있으며 그 나라의 영광스러운 예술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독재자가 아니었고 ‘낙수장’은 공공의 기념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라이트의 능력이 이런 기념비적 건축물들에 견주어 판단되고 있다. 그러니 ‘낙수장’에서 일어난 몇몇 결함에 일일이 변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1955년에 세상을 떠난 건축주 에드거 카우프만은 ‘낙수장’에 있는 가족묘에 묻혀 있다. 그리고 아들 카우프만 주니어는 1963년 상속받은 ‘낙수장’을 ‘서(西) 펜실베이니아 환경보전협회’에 기부했고, 그의 뼈는 낙수장이 있는 땅에 뿌려졌다. 이렇게 해 ‘낙수장’은 문자 그대로 이 가족에게 “그-안에-사람이-살게-된-공간”이 됐다.

건축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건축은 우리가 사는 법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건축은 크기나 면적을 가진 구조물이지만, 그 안에는 공간의 밀도, 공기와 같은 생활이 있다. 그래서 건축은 건축가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건축주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건축주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문화일보 5월23일자 28면 3회 참조)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나의 한옥 이야기 2.

한옥에 사신다면서요?
어떤 모습으로 사시는지 정말 궁금해요~ 사진있으면 좀 보여주세요^^
소리와 건축가인 내가 사는 곳은 기와형 한옥이다! 담안에서 보면 소박하고 인간적인 안락한 곳이다!

몇해전 옆집에서 건물을 지으며 약속한 담을 쌓지않아 한쪽 흉하다!
성질같으면 소송해서 혼쭐내주고 싶지만 신앙으로 참고산다!!!!!

어제는 특별히 마음이가서 아끼고 사랑하는 예쁜부부 이강민교수(교회음악콘닥터)와 사랑하는 제자 시영이까지 함께하는 자리가 있었다!

선덕원아이들의 합창을 지도하고 섬기며 귀하디 귀한 정통음악과 섬김을을 하시는 부부다!

이제 곳 한옥으로 이사하게 되었다며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원한다!

8:40에 만나 새벽 3시가 넘어 헤어졌다! 특별기획 음반제작 건으로 첫 모임인데…

한참을 일 얘기하다가는 선덕원아이들 이야기로…
또 잘나가다가 아이들이야기와 한옥의 삶 이야기!
참 마음가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회의는 꽝!

한옥에서는 아떻게 살아요?하는 아내 이경선 샘의 질문에 이것저것 설명하는데…
1. 메주를 쓰세요
2. 간장을 담그세요
3. 고추장 담그세요
4. 김장하세요~
그럼 건강하고 행복해진답니다^^

몸살에 입술터지고 앉아있기 힘든데 요~ 예쁜부부님들과 제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참 좋아 버티고 축복을 마누었다!

젊음이 좋은가?
웃는 선한 얼굴의 이강민샘!
와우~ 정말 지치지도 않는다~

지더라도 부럽다!!!

간만에 회포풀고 행복을 나누다^^

궁금하면 500원지만…
내가 사는 모습을 살짝 공개한다!

– 아내가 만들어준 특별식 굴김치 겉절이~ 한옥과 정말 잘어울리는 특식!
– 숯불을 일으켜 고구마, 감자, 고기 등을 굽고 사골늘 우릴때 이런다!
– 부부침실을 살짝 공개한다!
‘ㄷ’자형 한옥 구조라 본체에 자리한 침실은 한쪽의 길이가 많이 길다!
그래서 음악듣기, 독서하기, 조명에 참 좋은 구조이라서 나의 성경통독과 기도가 주로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또 욕조가 있는 큰 화장실이 침실에 붙어있어 편리하다!

가끔 통목욕라도 한다고 난리들이면
지금은 서재이자 음악연주실니 되어버린 작은방로 피난한다^^

자~ 이제 속이 시원하신가요???

주일예배준비 잘하시고…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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